제목 : 알곡 인생과 쭉정이 인생

 

본문 : 마태복음 3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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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눅 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와 누가는 세례 요한의 가르침 속에서 알곡과 쭉정이의 교훈을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다. 인생에는 알곡 같은 인생이 있고, 쭉정이 같은 인생이 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의 갈림 길에 서 있는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가르쳐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 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요, 예언자이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증거한 전도자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가르켜 [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 하셨으니, 세례 요한의 소중함을 기억 할 수가 있다. 또한 [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 하셨다.

 

이렇게 큰 인물인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외친 첫 음성이 바로 이 말씀이었다.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참으로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다.

 

농부가 추수를 하게 될 때, 마지막 하게 되는 일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일이다.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모아서 불에 태우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마지막도 그러하다는 말씀이다. 인생에게도 알곡 같은 인생이 있고, 쭉정이 같은 인생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인생을 추수 하면서 구별하게 될 때, 알곡 같은 인생인가 ? 쭉정이 같은 인생인가 ? 를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알곡 같은 인생은, 천국으로 들여 보내지만, 쭉정이 같은 인생은, 불구덩이로 들여 보내게 되는데, 지옥 불에 던져저 지옥의 땔감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곡의 인생은 어떠한 인생이며, 쭉정이의 인생은 어떠한 인생인가 ? 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는 어떻게 다를 가 ? 알곡과 쭉정이는 처음부터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볍씨와 새싻과 성장 모습이 똑 같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열매 뿐이다. 처음에는 열매도 모양이 똑 같다. 그런데 알곡은 후일에 열매 안에 내용물이 있고, 쭉정이는 열매 안에 내용물이 없다는 것이다.

 

농부가 추수를 하고, 마지막 작업을 하는 과정은, 쭉정이와 알곡을 가리우는 일인데, 이는 센 바람에 날리는 것이다. 바람에 날리게 되면, 알곡은 바람에 날리지 않고, 그 자리에 떨어지지만, 쭉정이와 검불과 먼지들은, 바람에 날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모아 지는 것이다. 이 쭉정이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그래서 농부는 이것을 거두어 불을 놓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인간을 평가하시게 될 때,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듯, 인생도 알곡 같은 인생과 쭉정이 같은 인생으로 분리 하시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알곡같은 인생의 내용물은 무엇일가 ?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인생은 누구나 알곡 같은 인생으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돌이킬수 없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쭉정이로 구분이 되어 질 때는 후회 한들 소용없고, 다시 알곡으로 돌아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 인생을 살펴 보는 것은, 타작 마당에서가 아니라, 지금이란 이 시간에, 내 인생이 알곡이 되어 가는 길을 찾아 내야 할 일이다.

 

이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벼 집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벼집이 제 아무리 튼튼하고 건장해도 쭉정이 이삭이 나온다. 그렇다고 벼 이삭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벼 이삭에는 수십 알의 열매가 달려 있다. 그러나 그 알곡 중에도 쭉정이가 끼어 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알곡과 쭉정이는 개체의 문제일 뿐이다.

 

알곡 같은 인생이냐 ? 쭉정이 같은 인생이냐 ? 하는 것은 어떤 그룹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 나 개인의 문제 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인생이 알곡 같은 인생이요, 어떤 인생이 쭉정이 같은 인생일가 ?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논리를 말하게 될 것이다. 가문이 좋고, 학문과 지식이 뛰어나며, 금력과 권력과 명예가 주어진 사람은, 알곡의 인생으로 확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 가진것도 없고, 누린 것도 없으며, 자랑 거리가 없는 인생은, 틀림없이 쭉정이의 인생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농장에서 벼집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겉 모양을 보고, 너는 알곡이야 한들 필요가 없다. 제 아무리 건실한 벼집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불타버리거나 썩어 거름이 될 검불이기 때문이다.

 

이삭도, 서로가 알곡이라 추겨 댄들 소용이 없다. 벼집에 추수의 칼날이 임하고, 타작의 기계에 휘말린 후에, 세찬 바람에 날릴 때, 그때 알곡과 쭉정이가 판가름 하게 되는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로 단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 주인의 몫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도 마찬 가지이다. 감옥의 죄수들이 의인과 죄인을 가리울 권한이 없고 재판장에게 있듯이, 이 권세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을 알곡과 쭉정이에 비유 한다면, 추수의 주인은 누구일까 ?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추수꾼은 천사들이요, 추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는, 어떠한 내용물이 갖추어져 있어야 할가 ?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쭉정이의 인생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인생은 알곡 같은 인생이다. 당신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가 ? 이 사실조차 모른다면, 분명 쭉정이 인생으로 자리 잡아 갈 확률이 !00 % 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꽉 들어 차도록 마음을 잡아야 할 것이다.

 

왜 ? 예수님을 모신자만이 알곡이요, 그렇지 못한 자는 쭉정이 인생일 가 ?

 

우리 인생과 관계 된 모든 것은, 언젠가 나와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 부와 권세와 영광등 모든 것이 나와 무관하게 된다. 성공도 명예도 필요 없게 된다. 심지어는 내 몸과도 상관이 없게 된다. 그러기에, 불구덩이에 집어 넣고, 뼈를 절구에 넣어 가루로 만들어도 관계하지 않는 다. 이것이 내 인생은 쭉정이에 불과 할 따름이란 증거다.

 

그러나 내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것은 어떠할 가 ? 예수님은 우리 인생이 자신 안에 모셔들여야 할 분이다. 예수님은 창조자이시다. 예수님은 인생의 구원자이시다. 예수님은 내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시다는 확신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사람은 알곡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신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 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이 없이는 결코 알곡의 인생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한번 생각 해 보자 !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람들이 부러워 하고 흠모하는 모든 것을 다 누리었다고 가정 해 보자 !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더 이상은 없다. 그런데 오늘 밤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을 해 보자 ! 그렇다면, 오늘 내가 누린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

 

그리고 내 몸 마져 이 땅에 추스릴 힘이 없고, 내가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게 되는 순간,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내 가족이 겨우 할수 있는 일이 있다면, 화장터에 데리고 가서, 불로 태우고, 뼈는 빻아 가루를 만들어, 땅에 묻어 주는 것 뿐이다. 그 이상 더 해 줄 일이 없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땅에서 내가 철저하게 버림받는 인생이 되어 질 때, 내 인생의 운명을 한번 생각 해 보았으면 한다. 이때야 말로, 진정 나를 도와 줄 분이 필요하게 되는 데, 나를 능히 도울 분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지 ? 막연히 하늘이라고 해야 할 가 ? 이때 살아 숨쉬는 생명이 있다면, 정말 쭉정이 같은 인생으로서, 어찌 할수 없는 모습으로 방황하지 않을 가 ? 이것이 바로 바람에 나는 겨 같은 인생의 운명이란 말이다.

 

그러나 알곡 같은 인생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세상의 부귀 영화를 누린자 보다,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며, 떠나가는 인생이 된다 할지라도, 영원한 희망이 있다. 나를 반겨 줄 분을 알고 있다. 천군 천사를 대동하고, 오셔서 나 같은 인생을 환대하여 주시는 분이 계심을 확신한다. 그 분이 바로 내 죄를 담당 해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이시다. 이 분은 창조자이시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이시다.

 

이 분에 대한 확신하는 믿음이, 내 마음, 내 사상, 내 생명체 속에 꽉 들어 차 있다. 이분이 나를 천국 창고에 환대 해 드릴 분이시다. 예수님이 바로 이 세상에서도 기원이 되시어, 주님의 기원을 가슴과 자기 인생에 새기고, 생명의 주로 섬기고 살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사상, 예수님의 체험으로 가득 차 주님으로 섬기게 된다. 이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런 사람이 알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 가 ? 우리는 알곡의 인생으로 살아 가야 한다. 지금 나는 알곡으로 열매를 맺혀가고 있는 가 ? 쭉정이의 특징은 이삭이 나올때부터 머리를 끝까지 꼿꼿하게 치겨 세운다. 이와같이 쭉정이 같은 인생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이 잘났다고 머리를 추켜 세운다. 이 쭉정이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조차 전혀 없는 사람이다.

 

빈손들고 적신으로 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해의 열매를 먹고 살아 왔으면서도 그 은혜를 전혀 감지하지 않고, 보잘 것도 없는 자신의 교만 만을 자랑하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도 성도가 되고, 신자가 되었다고 방심하지 말고, 쭉정이의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항상 성찰 하였으면 한다.

 

 

2011. 10. 14.

 

김석태 선교사